밤길에서 마주친 소녀
서울 외곽의 한적한 동네,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준호는 늦은 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음산한 밤이었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지하철 막차를 겨우 타고 집 근처에 도착한 그는, 평소와 달리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고요한 길에 불빛 하나 없는 좁은 골목이 오늘따라 더 어둡게 느껴졌고, 비가 내리면서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준호는 자주 다니는 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그 길은 오래된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목이었고, 이곳에는 가로등이 드물었다. 날씨도 추운 데다 늦은 시간이라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발걸음을 서두르면서도 준호는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첫 번째 만남
길을 걷던 중, 그는 좁은 골목 모퉁이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작은 체구의 소녀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우산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비에 젖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준호는 순간 멈칫했다. '이 시간에 저 아이가 왜 여기에 있지?' 그는 잠시 망설였다가 소녀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저기... 괜찮아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디 가는 길이에요?”
소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치 준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준호는 다시 물었다.
“어디 사는지 말해주면, 집에 데려다줄게요. 혼자 있으면 위험해요.”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준호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소녀를 그냥 두고 가기도 찜찜했다. 그는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뻗으려 했다. 그때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준호는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녀의 얼굴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입은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기이하게 찢어져 있었다. 얼굴 전체가 비에 젖어 창백하게 보였고, 무엇보다 그 눈동자는 준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준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눈빛에 준호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이상한 느낌
준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얼어붙었다.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내 준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소녀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차갑고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준호에게 다가왔다.
공포에 질린 준호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고, 골목 끝까지 도망쳐 나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면서도 그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한참 동안 문을 잠그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게... 대체 뭐였지?' 준호는 그 순간이 악몽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소녀의 정체
그날 이후, 준호는 그 소녀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자꾸만 그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준호는 이상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비 오는 밤, 그 소녀와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는 더 가까이 다가와 준호의 이름을 속삭였다.
"준호 오빠... 왜 도망갔어요?"
꿈에서 깨어난 준호는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있었다.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 꿈이 반복될수록 준호는 점점 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일이 단순히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무언가가 그를 쫓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준호는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소녀, 혹시 그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이 동네에 그런 소문이 돌거든."
그 친구는 준호에게 이 동네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괴담을 들려주었다. 몇 년 전, 이 동네에서 한 여학생이 실종되었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들은 그녀가 비 오는 밤에 집에 돌아가다가 실종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찾지 못했고, 그 이후로 이 동네에서는 비 오는 밤마다 그 소녀의 유령을 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있으면 그 소녀와 마주치게 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불행이 닥친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만남
소름이 끼친 준호는 그날 이후로 비 오는 날엔 절대 골목을 지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몇 주 후, 운명의 장난처럼 다시 한번 비가 내렸다. 준호는 야근을 하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그날 따라 택시도 잡히지 않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골목을 지나가야 했다. 골목에 들어서자 다시 한번 그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소녀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 소녀가 골목 중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비에 젖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얼굴은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창백하고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준호를 따라 움직였다.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준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천천히, 하지만 똑바로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왜 도망갔어요, 준호 오빠?" 그녀의 목소리가 고요한 밤을 가르며 울렸다.
준호는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소녀는 준호의 바로 앞에 다가왔다. 그녀는 손을 뻗어 준호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준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소녀는 그를 향해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나랑... 같이 가요."
그 순간 준호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소녀가 더 가까이 다가오며 준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
며칠 뒤, 사람들은 준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흔적은 그 골목에서 발견되었다. 우산이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의 휴대전화는 마지막으로 비 오는 밤, 그 골목에서 신호를 보냈다. 아무도 준호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골목에 대한 또 다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특히 비 오는 밤이면 그곳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공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권력과 종교의 비극 (0) | 2024.09.27 |
---|---|
[공포]잃어버린 길의 소녀 (3) | 2024.09.27 |
[공포]숲 속의 기이한 집 (0) | 2024.09.27 |
[공포]어둠 속의 남자-기묘한 사건의 시작 (0) | 2024.09.27 |
[공포]나폴리탄 괴담 (6) | 2024.09.27 |